주변스토리 2/대교농장

대교농장(일제 수탈의 현장)

대교농장은 일본인 부호인 대교여시(大橋與市)에 의해 개설되어 이리시장(현 남부시장)에 사무소를 건축하고, 1928년 당시 1,300정도의 논을 소유하여 농장을 경영하였다. 
대교농장의 사무실과 쌀 창고가 있었으며 지금도 사무실과 부속건물 및 서쪽의 석축 담이 그대로 남아있다. 대교여시는 일본인(경도제국대학출신)으로 1907년 9월에 맨 먼저 이리에 농장을 세운 사람이다.
 대교농장은 익산지방에서는 6번째, 전북에서는 12번째의 규모가 큰, 일인 농장이었다. 
일본은 전북지역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전주-군산 간 도로를 건설하고 과거 전주가도를 기본으로 1907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3.1운동 당시 이곳 대교농장에는 곡식창고가 있었는데 이리시장(현 남부시장)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경은 시위 군중이 곡식창고를 습격하는 것으로 오인하여 창고의 담 위에서 무차별 발포하였다고 한다. 
이리시 택지의 대부분이 대교농장의 소유였다고 한다.
이곳이 전북지역 농업수탈의 현장이라는 점과 일제하의 농장사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현존 건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생활적 가치가 있는 건물로, “대교(大橋)”라는 문양이 새겨진 망와가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사무실 건물은 2005년 11월 11일자로 등록문화재 209호로 문화재청에 등록되었다.

대교농장 사무실 건물  

 ◎  익산시 등록 문화재 제 209호
 ◎ 소재지 : 주현동 105-9 
 ◎ 건축년대 : 1907년 (지상2층/일식목조

호남평야 착취의 대명사, 대교농장과 익옥수리조합

최대 쌀 창고 관리 위한 사무실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실 및 창고는1930년 건립된 건물이며  2005년에 등록문화재 제181호로 지정됐다.
농지 관리 위해 지어진 건물이며  쌀 수탈과 노동력 착취등 근대역사의 한 대목으로 남아있다. 
일제는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아 간 을사늑약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농장을 세워 농토약탈을 자행했다.
대표적인 평야지대인 호남평야, 이 지역을 일찍부터 눈독을 들인 일제는 1907년에는 대교(오오하시)농장을 세웠다. 대교농장은 1914년 남부시장에 사무실을 열고 당시 1,300여 정도의 논을 소유했다. 
익산시의 전신인 이리시의 구도심 대부분을 대교 농장이 소유하다시피 한 것이다.

옛 일본인의 농장 사무실이 바로 대교농장의 사무실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이 건물은 2층으로 일본식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농장의 모습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며, 수탈 지역이었던 이곳의 상황을 잘 나타내는 역사적인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재료는 목재를 사용하였으며, 벽체의 1층 부분은 나무판자를 덧대어 비늘벽으로 처리한 것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2층에 해당하는 부분의 외벽은 골진 함석으로 덧대었는데 나중에 관리 목적상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8·15광복 이후부터는 이리화교소학교 교사로 사용됐으며, 지난 2005년 11월 11일에 등록문화재 제209호로 지정돼 현재는 익산시화교협회 창고로 쓰이고 있다
이 농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해서였는지, 익산지역의 3·1운동은 당시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남부시장 내 대교농장의 사무실 바로 앞에서 시작됐다. 
현재 구 일본인(대교)농장 사무실과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순국열사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