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익산의 훌륭한 애국지사들이 있었다는 점을 알리고 독립 운동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익산 4.4만세운동 기념식’이 익산남부시장 순국열사비 일원에서 매년 열린다.
1919년 3월 1일 온 겨레가 부른 대한민국 독립만세는 한일합방에 항거하는 통렬한 민족의 함성이었다.
3.1독립만세운동에 유관순 열사가 주도했다면, 익산 남부시장에서 일어난 4.4 만세운동은 오산 남전교회 최대진 목사와 도남학교 문용기 선생이 주도하여 박영문 장경춘 박도현 서정만을 중심으로 이곳 장터에 모인 천여 명의 군중 앞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지휘하던 중 무자비한 왜적의 총칼아래 장렬히 순국한 대규모 항일시위로 기록되고 있다.
익산 오산 남전교회는 1897년에 세워진 교회로 익산지역 최초의 기독교 교회이며, 민족수난기 일제 항거해 3.1운동과 4.4독립만세를 주도한 진원지이다.
4.4만세운동은 3.1운동과 같은 맥락의 운동으로 문용기 열사가 오산 남전교회 성도들과 기독교인, 학생 등 200여명과 함께 시작했으며 1919년 4월 4일 이리 장날(현 남부시장: 과거 남부시장은 장날이면 사람이 아주 많이 모였던 곳)에 맞춰 대교농장 앞 장터에서 장날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합류해 대규모 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군중은 그의 지휘아래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가지고 대열을 지어 시가를 행진하였다. 점차 군중이 1,000여명으로 늘어나고 그 기세도 오르자 일본 헌병대가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여 하였으나 시위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남부시장 옆에는 일본인의 대교(大橋)농장이 있어 농민들의 쌀을 수탈했기 때문에 일제에 대한 분노를 이곳에서 표출하게 되었다.
익산은 김제평야와 함께 일제 식량수탈의 거점이어서 일본 경찰이 대거 배치됐지만 거사는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이 운동은 전북지역 최초의 성공적인 만세운동으로 기록됐다.
다른 지역에서는 3월1일에 많은 의거를 했으나 익산과 군산은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오산면 남전교회 최대진 목사와 도남학교 문용기 선생과 성도들은 4월 4일 만세운동을 계획하여 사전 정보의 유출을 막고, 모든 필요한 유인물과 장비를 준비한 후에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강행한 것이다.
당황한 일본 헌병과 농장원 수백 명들이 무력과 흉기(창검, 총, 곤봉, 갈쿠리 등)로 무차별 진압을 강행하여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이때 문용기 열사는 의연히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군중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일본 헌병이 칼을 휘둘러 그의 오른팔을 베어 태극기와 함께 땅에 떨어뜨렸다. 그는 쓰러지지 않고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전진하자 이번에는 그 왼팔마저 베어버리니, 그는 두 팔을 잃은 몸으로 뛰어 가며 계속 만세를 불렀다. 이에 격분한 일본헌병은 그를 추격하여 사정없이 난자하니 끝내 순국하고 말았다.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 문용기 열사는
“여러분! 여러분! 나는 이 붉은 피로 우리 대한의 독립 정부를 음조(陰助)하여 여러분으로 하여금 대한의 독립된 국민이 되게 하겠소.”라고 외치고 순국 하였다.
그러나 당시 도남학교 학생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한 16세의 박영문 열사와 몇 분의 열사는 추모할 후손이 없고 후사가 없다.
매년 4월 4일이면 익산남부시장 인근 3.1독립운동기념공원(순국열사비)일원에서 익산 4.4만세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 운동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지역주민과 각 기관 유지들과 함께 추모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해가 거듭할수록 참여와 추모열기가 높아가고 있다.
4.4만세운동은 후에 1948년 초대 이승만대통령이 높이 평가하여 친필로 현장에 순국 열사비를 세우 도록하고 비문(碑文)을 하사하였고,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1949년 4월 29일 익산시민일동의 명의로 이 비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전쟁 중 이 비석을 넘어뜨리고 李承晩書(이승만서) 라고 새긴 부분을 깨뜨려 없애려고 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위치: 익산시 주현동105-19번지 (익산남부시장 주변)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大韓民國獨立有功人物錄)』(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문용기 [文鏞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광복 70주년을 맞아 익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문용기 열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동상 제막식이 2015년 4월 4일(토)오전 9시 30분에 남부시장 근처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공원에서 박경철 시장을 비롯해 시의회 조규대 의장, 익산보훈지청 박행병 지청장, 문용기 열사 동상건립추진위원회 최병선 회장, 시민단체, 종교계 등 약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번 제막식은 문용기 열사의 호국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시민들로 구성된 문용기 열사 동상건립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이뤄졌다.
문용기 열사의 호국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시민들로 구성된 문용기 열사 동상 건립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모금운동을 펼쳐 국비를 포함해 약 2억 원 이상의 성금이 모아져 동상을 제작하고 이날 제막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익산시립무용단의 진도북춤, 익산시립합창단 공연
사단법인 새벽이슬에서 4.4만세 재연 퍼포먼스를 하였는데 문용기 열사의 유족과 일부 시민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참석했던 이들에게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2014년 95회에도 (사)새벽이슬에서 퍼포먼스를 하였는데 우리 고장에 있었던 독립운동을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고자 함이라 한다.
※동상 제막식에 관한 기사는 많은 지역신문에서 보도되었다.
시대적 의미와 역사적 가치 재조명
4.4만세 운동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 물결을 이루며 독립을 위해 만세를 외치다 일본의 총칼 앞에 장렬히 산화한 문용기 열사 외 5인을 추모하기 위한 충혼비가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기념관을 세워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익산에 훌륭한 애국지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애국심을 계승시킬 수 있는 생생한 교육 현장으로서 학생들의 산 교육장이 되게 함은 물론이고, 훌륭한 독립운동 사실을 길이 알리고 보존할 수 있도록 해야 우리고장 익산의 문화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도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역유지들은 목소리를 모은다.
[사진자료]
문현호 님